
한강 물결이 반사하는 오후 3시의 햇살, 마포구 한 상가 건물 5층 발 매니큐어 샵 '발톱의 신'에서 주인공 서하늬가 고객의 새까만 발바닥을 닦으며 한숨을 쉬었다. "고객님, 이 각질은 전쟁터급이네요. 3회 패키지 권장드립니다." 그 순간 문짝이 박살 나는 소리와 함께 화려한 레드 벨벳 박스가 쿵 소리를 내며 카운터에 착륙했다.
"이거 오늘 새벽 런던에서 공수해 온 거예요. 당신 같은 사람에게 절대 필요한 물건." 말꼬리를 흐리는 프랑스식 한국어 발음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7cm 뾰족구두였다. 구두깔에 새겨진 'Jimmy Choo' 로고가 햇빛에 반짝였다. "내 이름은 지미. 당신의 인생을 힐즈(heels)로 힐링(healing)해드릴게요."
하늬가 구두 상자를 들고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자, 지미 구두가 혀를 차다. "아직도 모르겠어? 지난주에 지하철에서 핸드폰 떨어뜨렸을 때 누가 발끝으로 유턴시켜 줬다고 생각해?" 하늬가 깜짝 놀라 구두를 바라보았다. "그게… 당신이었어?!"
다음 날 아침, 하늬는 생애 처음으로 79만 원짜리 구두를 신고 출근했다. "발목 접질려서 119 신고할 각오는 됐죠?" 동료 미라의 조롱을 뒤로한 채 첫걸음을 내딛는 순간── 구두 뒤꿈치에서 미세한 진동이 전해졌다. "지금부터 네 중심을 조절해 줄게. 허리 펴고 어깨 내리고!"
그날 이후로 하늬의 인생은 힐즈의 지휘 아래 움직이기 시작했다. 회의실에서 상사가 침을 튀기며 야유할 때면 구두코가 홱 돌아가며 책상다리를 찍었다. "똑딱! 이 자리가 네 자리 아닌 거 알아?" 업무 평가서에 '창의성 제로'라고 써진 날에는 구두가 스스로 회사 옥상으로 올라가 반항의 댄스를 췄다. "이게 바로 창의적인 퇴사안내야!"
문제는 힐즈의 도발적 행보가 점점 과격해진다는 점이었다. 이태원 클럽에서 만난 잘빠진 남자에게 구두가 갑자기 스타일러스 높이를 10cm로 변경하며 외쳤다. "이 정도 높이면 네 허리 디스크 각도가 15도 더 꺾여!" 남자가 도망가는 모습을 보며 하늬가 울상이 되자, 지미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사람은 신발만큼 자신의 한계를 믿어야 해."
결국 사건은 법정까지 번졌다. 전 남자 친구가 스토킹 신고를 하겠다고 협박하자, 지미가 법원 계단에서 180도 회전 킥을 날린 것. "이건 정당방위예요. 여성의 발은 무기랍니다!" 판사가 경악하며 구두를 유물로 압수하려 하자, 지미가 깔창을 열어 세관 신고서를 꺼냈다. "저는 영국 왕실의 외교관 신분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날 밤, 하늬는 구두와 진지한 대화를 나눴다. "당신 덕분에 용기 생겼지만… 이러다가 교도소 신발이 될 것 같아." 지미가 깃털처럼 가벼운 숨소리로 답했다. "네가 진짜 원하는 게 뭔지 알 때까지 멈출 수 없어. 진짜 힐링은 편안함이 아니라 자신과의 싸움이야."
에필로그: 신발장 속 선언문
1년 후, '발톱의 신'은 '힐즈 힐링 연구소'로 리뉴얼했다. 하늬는 지미 구두와 함께 발 마사지 대신 인생 컨설팅을 시작했다. 첫 고객이 찾아온 그날, 구두장 속에서 새로 온 크리스찬 루부탱 하이힐이 중얼거렸다. "지미 언니, 오늘은 내가 도와줄게요. 발뒤꿈치 각도 27.3도로 조정 중!" 창밖으로 들려오는 하늬의 목소리가 분명했다. "오늘의 처방은 레드 색상의 자기 선언문 작성이에요. 발끝으로 쓰면 더 강력하답니다!"
(이 이야기는 모든 여성이 자신만의 '지미 추'를 가지고 있음을 일깨웁니다. 진정한 명품은 가격표가 아니라 당신의 걸음을 지키는 용기입니다!) 👠💫